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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Czech

[체코 여행] 프라하 - 천년의 역사가 숨쉬는 성 비투스 대성당(St. Vitus Cathedral)

by 프라하 금빛 2018. 7. 30.

천년의 역사가 숨쉬는 곳 - 성비투스 대성당(St. Vitus Cathedral)

 

체코 프라하의 랜드마크 프라하성을 보고 있자면 마치 어릴 적 동화속에서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들게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읽었던 공주님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체코의 프라하성 안에서도 화려한 자태를 뽑내고 있는 성 비투스 성당을 만날 수 있다. 제 2정원에서 제 3정원으로 가는 위치해 있는 성당은 블타바 강 너머에서도 보일 정도이다. 오늘은 체코를 대표하는 건축물 '성 비투비스 대성당'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 한다. 

 


△ Photo by 하늘의 보배 - 프라하 성 티켓가격 알림판

 

바로 전 포스팅에서 말했듯이 프라하성은 무료로도 관람이 가능하고 유료도 관람도 가능하다. 표를 구매해야만 건물 안으로 방문이 가능하기 때문에 내부 방문을 원하는 분들은 필수로 표를 구매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입장을 시작하였다.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어보았는데 가까이에서는 카메라에 다 담기도 힘들 정도로 엄청난 규모이다. 내가 등치가 작은 편이 아닌데 저렇게 성당과 함께 찍어보니 내 자신이 엄청 작아보일 정도로 성당의 규모는 어마어마 하였다. 전체 길이 124m, 너비 60m, 높이 33m의 크기이다. 몇 몇의 관광객들은 아예 땅바닥에 들어누워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저 정도까지만 찍어보았다. 성 비투스 대성당은 프라하에서 가장 큰 교회일 뿐 아니라 보헤미아 군주들이 대관식을 올리기도 하였으며 성당의 중앙에는 합스부르크가의 페르디난트 1세와 가족들이 잠들어 있다고 한다.

 



△ Photo by 하늘의 보배 - 성 비투스 대성당 내부

 

성당 안으로 입장하게 되면 밖에서 보았던 규모만큼 웅장한 크기를 모두 채우는 예술 작품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우리가 보는 고딕 양식인 지금의 모습으로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한 건 1344년 11월 21일 프라하가 대주교 관할로 승격하고나서 부터이다. 프랑스 출신의 건축가 마티아스(Matthias of Arras)에 의해서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설계를 하였다. 공사는 착공을 시작하였지만 그가 1352년에 사망한 후 당시 23세였던 독일 건축가 페터 파를러(Pater Parier)가 그의 뒤를 이어 감독을 맡은 후 작업을 이어갔다. 성 비투스 성당의 둥근 천장은 고딕 건축의 걸작이라고 한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으로 몇 군데 증축이 되었지만 계속 19세기까지 미완성 상태였다가 1929년 건축이 시작한지 거의 600년이 지나서야 완성이 되었다. 중간에 보헤미아지역의 종교 개혁을 일으킨 후스파에 의해 15세기 전반에 후스전쟁이 일어나는데 후스전쟁 때와 1541년 화재로 공사 중단과 큰 손상을 입기도 했다고 한다. 






△ Photo by 하늘의 보배 - 성 비투스 성당 스태인 글라스


성 비투스 대성당의 단연 으뜸은 스테인 글라스로 이미 유명하다. 스테인 글라스 대부분의 내용은 성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성당 내부에 들어오는 햇빛에 따라 신비한 느낌을 주는 스테인 글라스 실제로 더 아름다우나 나의 사진 찍는 실력이 스테인 글라스의 명성을 죽이는 것 같다. 체코의 유리공예 기술은 유럽의 최고인데 그 명성만큼이나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엄청나게 신경쓰인게 느껴진다. 가장 좋은 건 공사 기간이 길었던 만큼 번성했던 10세기 유럽의 예술 시대 전반에 걸친 고딕부터 현대까지의 모든 예술 양식을 볼 수 있는 특별한 곳인 것이다. 또한 이런 정교한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몇 백년이나 지속했을 뿐 아니라 완성했다는 그 노력에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역사가 깊은 만큼 사전에 배경지식에 대해 공부를 미리 해간다면 좀 더 즐길 수 있는 관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Photo by 하늘의 보배 - <성 키릴과 성 메토디우스> '알 폰스 무하의 작품'

 

서쪽 측량의 왼쪽에 위치한 또 다른 유명한 스테인글라스가 있다. 체코의 대표적인 아루노브 예술가 '알폰스 무하'의 작품으로써 <성 키릴과 성 메토디우스>라는 작품이다. 그는 체코의 화가이며 장식 미술가로 아르 누보 양식의 대표작가로써 실용미술을 순수미술의 단계로 끌어올린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근대미술의 새로운 영역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 작품은 유리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린 후 여러 번 굽는 방식을 사용해 더욱 정교하고 선명하다고 한다. 또한 이 작품의 내용은 처음으로 슬라브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성 비투스 대성당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스테인글라스라고 하니 방문 하시는 분들은 꼭 참고해서 놓치지 말고 보시길~!!!

 

△ Photo by 하늘의 보배 - 성 요한 네포무크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

 


△ Photo by 하늘의 보배 - 성 요한 네포무크  무덤

 

체코에는 국민적인 성인인 '성 요한 네포무크'라는 분이 계신다. 전설에 의하면 이 분은 보헤미아 왕비의 고해신부였는데 왕비에 대한 고해성사의 내용을 물어보는 왕의 요구를 거절하자 보헤미아 국왕이자 로마왕이었던 바츨라프 4세에 의해 갖은 고문을 당하고 블타바 강에 내던져져 생매장 당하였다고 한다. 이 곳은 성 요한 네포무크를 모신 곳으로 2000kg 은으로 장식되어 있다고 한다. 이 분의 동상은 카를교 위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 동상을 만지면서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이 만졌는지 그 부분만 청동이 벗겨져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바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 Photo by 하늘의 보배 - 성 비투스 성당 최후의 심판

 

 △ Photo by 하늘의 보배 - 성 비투스 성당 천지창조

 

성 비투비스의 자랑인 성경의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묘사한 스태인 글라스와 천지창조에 대해서 묘사한 스태인 글라스라고 한다. 천지창조 작품은 저 안에는 유리조각이 22만 6천개 조각이 들어갔다고 한다. 스테인글라스는 미적으로나 교리 전달으로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스태인글라스를 '가난한 자의 성경'이라고도 하는데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하여 그림으로 교리의 전달의 의미도 있었던 것이다.

 

△ Photo by 하늘의 보배 - 성 바츨라프의 예배당

 

알폰스 무하의 반대편 쪽에 바츨라프의 유골이 보존된 예배당이 있다. 가운데 바츨라프의 조각상이 서 있으며 벽 뒤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바츨라프의 생애를 그렸다고 한다. 체코에는 '바츨라프'라는 유명한 분이 두 분 계시는데 바츨라프는 뒤에 보헤미아 공작이라고 따라 붙어서 구분이 된다. 이 분 또한 체코의 로마 카톨릭교회의 성인 중 한 분으로 성 바출라프라는 별칭도 있다. 앞서 보았던 성 키릴루스와 성 메토디우스(알푸스 무하 스태인글라스의 주인공들)를 통해 기독교로 개종한 보르지보이 1세의 손자로 기독교인으로 키워졌다. 그는 18세 때 어머니를 추방시키며 실권을 장악하였으며 프라하에 성비토스 대성당을 건립하였다. 그는 동생인 볼레슬라프의 부하들에 의해서 살해 당하고 말았다. 체코에 바츨라프라는 광장이 있는데 그 광장의 이름은 이 분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으며 9월 28일은 성 바츨라프의 날이라는 공휴일도 있다. 바츨라프의 유물이 전시된 이 예배당은 성 비투스 성당의 필수코스이다. 그는 체코의 최고의 수호 성인으로 왕관에는 세계 최대의 사파이어가 박혀있으며 황금으로 칠해진 예배당 벽에는 석류석, 자수정, 에메랄드등 1,372개의 보석들이 박혀있다.

 



△ Photo by 하늘의 보배 - 성 바츨라프의 예배당 조각상들

 

오랜 시간 걸쳐서 공사를 한 만큼 다양한 양식이 혼합되어지고 어느 곳 하나 정성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어서 지나가는 작품 하나 하나 감상하기 바빴다. 당대 최고의 기술자들과 예술가들이 투입되어 지어졌을테니 이런 최고의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그 시대에 이 모든 걸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는게 놀라울 따름이였다. 여기서 사람들이 잠깐 헷갈릴 수 있는게 어떤 이는 성 비투스 대성당을 천년의 역사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완공되기까지 600년 걸렸다고도 하는데 이 부분이 헷갈릴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의문이 생겨 그 부분에 대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프라하성에 최초로 지어진 성당은 9세기에 지어진 성모마리아 성당으로 지금은 잔해만 남아있는데 925년 바츨라프왕이 독일의 헨리 1세에게서 성 비투스 성인의 왼팔을 기증받아 성 비투스 로툰다를 지었다. 11세기에 이르러 프라하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로툰다는 철거되고 로마 네스크양식의 성당이 지어지고 성 비투스 성인의 왼팔이 모셔지게 된다. 1344년에 이르러 프라하의 인구는 또 한 번 급증을 하고 대주교 관할로 승격되어 프라하에 대성당이 필요해지면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성 비투비스의 성당의 모습으로 건축이 시작된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 성모마리아 성당부터 역사를 따라가게 되면 천 년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는 성당의 모습의 건설 기간은 약 600년이 걸렸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아시고 싶은 분은 자세한 설명이 되어있는 분의 출처를 말씀드리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출처 : 홍차의 삶의 뜨락님 블로그 참고>

 

성 비투스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나도 이 번 포스팅의 내용이 다른 때 보다 길어진 것 같다. 아마 유럽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이라면 대부분은 성당을 들리실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 만큼 누군가가 여행 가시기 전이든 후이든 나의 블로그를 보고 성 비투스 대성당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면서 이 번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